孔門十哲 -8 오공 언언(吳公 言偃, BC 506 - ?)

by jjhyanggyo posted Mar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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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門十哲 -8 오공 언언(吳公 言偃, BC 506 - ?)

 

서무 배향(配享) 제4위(第四位)

 

 

문묘배향인물.jpg

 

 

 

언언(言偃)은 성이 언(言), 이름이 언(偃)이며 자는 자유(子游)이다. 오(吳)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5세가 적은 공자의 제자이다. 『공자가어』에는 노인(魯人)으로 공자보다 35세 적다고 되어있다.

자유는 공자가 열국을 주유한 후에 제자가 되어 비교적 종사한 것이 늦기는 하였으나 배움에 능하여 이룸이 있었다. 특히 자유는 유가에서 주장하는 예악정치(禮樂政治)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자유가 무성재(武城宰)가 되어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공자가 무성에 갔을 때 현가(絃歌)의 소리를 듣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기를 "닭 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겠느냐?"하고 하자 자유는 "예전에 선생님께 듣기로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는 "자유의 말이 옳다. 지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다"라고 하였다.

맹자도 "자하, 자유, 자장은 모두 성인의 일부분이 있다."라고 하였다. 자유는 사람됨이 자잘한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여 대화나 일의 처리에서 소홀함이 있었다. 이는 자하와의 논쟁에서도 알 수 있다. 자하가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출입하여도 괜찮다"고 하자 자유는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대하고 진퇴하는 예절을 당해서는 괜찮으나, 이는 지엽적인 일이요 근복적인 것은 없으니 어찌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자 자하가 듣고 "언유의 말이 지나치다. 군자의 도에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며, 어느 것을 뒤라고 하여 게을리 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구역으로 구별되는 것과 같으니. 군자의 도가 어찌 이처럼 속이겠는가? 처음과 끝을 구비한 것은 오직 성인이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하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나누어서 논할 수 없음을 주장한 반면, 자유는 그것을 분명히 구분하여 큰일에는 그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작은 일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문십철에 열입 되었으며, 당 현종 개원 27년(739)에 오후(吳侯)로 봉해졌고, 송 진종 대중상부 2년(1009)에 단양공(丹陽公)으로 가봉되었다. 그후 남송 도종 함순 3년(1267)에 오공으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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