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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史雜草 -87  文-  금산 서당기

金山書堂記-巨濟宗氏


自古賢士講道之處 後人從 而祠之者 所以不忘 其功德也 士之居是以也 使人孝悌忠信 安俯尊榮其功德 孰大於是 故禮 曰 有功德於民 則祠之者 此之謂也


예부터 어진 선비가 도를 강의한 곳에 뒤 사람이 따라 사당을 세운 것은 그 공덕을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선비가 산 곳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효제충신의 그 공덕을 편안 풍성하고 지위가 존엄 영화롭게 하려 하여서이다. 누가 여기에서 위대할 것인가? 그러므로 예에 이르기를 백성에 공덕이 있으면 곧 사당이 있는 것은 이를 이른 것이다.


我 宣廟巨濟島 有一處士 姓李 諱得老 號濟川 陜川人也 賦性淳厚 持心淸白 德行文學 可爲當世之師表


선조 때 거제도에 한 처사가 있었으니, 성은 이요, 휘는 득로, 호는 제천으로 합천인이다. 본성이  순박하고 두터우며 마음가짐이 깨끗하고 덕을 행하며 문학은 가위 당시 세상의 사표가 되었다.


晩年以遯世之意 乘桴浮海入 于巨濟島 大金山下 逍遙乎 林樊之間 潛心乎 性理之學 始島人未知學


만년에 세상을 등지는 뜻에서 뗏목을 타고 거제도 바다에 들어와 대금산 아래에서 소요하며 숲속 사이에서 마음을 가라 앉혀 성리의 학문을 시작하니 섬사람들이 알지 못한 학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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