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1 00:33

전주향교 全州鄕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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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州鄕校는 고려 공민왕 3년(서기 1354년) 풍남동 경기전 북편에 건립되었다가 조선 태종 10년(서기 1410년)에 태조 영정을 봉안할 경기전(慶基殿) 건립으로 부(府) 서쪽 화산동으로 옮겨졌다. 약 139년 후 성내에서 거리가 멀고 전주천을 넘나들기가 불편하고 객사에서 남면하여 좌측에 문묘, 우측에 사직단이 자리하여야 한다는 고제에 의하여 선조 36년(서기 1603년) 관찰사 장만의 상계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재이건하였다.


 유서 깊은 전주향교는 유학의 정신문화를 계도할 인재양성을 위한 학문수련의 요람이며 대성전에는 만세종사이신 孔夫子를 정위로 모시고, 안자, 증자, 자사, 맹자를 중앙에, 그 외 아국 18현을 동서벽에, 공문십철, 송조육현과 중국의 7현 등 23위의 유현을 동서무에 설위하고, 계성사에는  오성의 고위를 모셔 총 51위의 선현성현을 모시고 있는 대설위의 문묘로서 춘추로 석전을 경건하게 봉행하는 전당으로 유림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거점이다.


 전주향교는 건곤조화(乾坤造化)의 신비를 간직한 길지(吉地)에 위치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향교로서 650여 년의 역사의 굴곡을 격으면서도 끊임없이 이어 온 강인한 발자취와 유학의 교리를 천명하여 충효와 예절의 인륜지도를 선양하고, 수제치평(修齊治平)의 치도(治道)를 함양하여 인의성지(仁義聖旨)의 실천을 으뜸으로 삼고 있으며 고유문화를 전승하고 미풍양속을 면면히 이어온 자랑스런 향교이다.


 교육은 민족의 미래를 결정하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국가백년대계(國家百年大計)이므로 모두가 대학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나 8·15해방을 맞을 당시 전주에 대학교가 하나도 없었다.


 인륜과 도덕의 함양으로 인생을 닦아 인간의 본질계발의 교육에 큰 역할을 담당하여 온 전주향교는 재단법인을 만들어 대학교 설립을 구상하고, 당시 전라북도 학무국장이던 윤택중씨와 이봉구, 유직양 등이 주동이 되어 많은 유림들과 함께 전주향교 명륜당에 모여 대학교를 설립 할 것을 난상토의 끝에 합의 결정하고, 학교명은 유림의 뜻에 따라 명륜(明倫)으로 정하고 도지사의 학원인가를 받아 객사를 빌려쓰기로 하고 학생을 모집하여 서기 1949년 8월에 첫 학기를 시작하였으나 교육의 열기는 높은 반면에 제반 여건과 사정이 여의치 못하였다.

 

 월년(越年)하여 정식 대학의 인가를 받기 위하여 이봉구는 당시 국회법사위원장이었던 백관수(白寬洙) 의원(625사변 때 납북)을 찾아가 지원을 간청한 바 백 의원은 흔쾌히 응락하고 당시 문교부장관이던 안호상(安浩相)박사에게 간절 요청하여 드디어 서기 1950년 4월 13일 초급대학(법학과와 국어한문과) 인가를 얻어 명륜대학(明倫大學)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객사의 시설구조가 年久하여 낡고 흙 바닥위에다 의자와 책상을 놓고 수업을 하는 까닭에 시설이나 재정 등이 열악(劣弱)한 상태로 주간에는 국어한문과 야간에는 법학과를 강의함에 어려움이 많아 향교와 유림 그리고 뜻있는 인사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명륜대학은 국립대학 설립 운동에 의하여 서기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