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門十哲-5 여공 단목사(黎公 端木賜, BC 520 - ?)

by jjhyanggyo posted Mar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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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門十哲-5 여공 단목사(黎公 端木賜, BC 520 - ?)

 

東무 배향(配享) 제3위(第三位)

 

 

문묘배향인물.jpg

 


춘추 말엽의 위국인(衛國人)으로 성은 단목(端木)이며, 이름은 사(賜)이고, 자는 자공(子貢)이며, 공자보다 31세 적은 공자의 제자이다.

출신이 한미(寒微)하여 청년시기에 곧 상업 활동을 하였다. 공자가 열국을 주유(周遊)하면서 위(衛)나라에 이르렀을 때 자공이 배알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후에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면서 상업을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공자의 서세(逝世)에는 모든 제자가 삼년상을 입었으나 유독 자공만은 무덤가에 묘막(墓幕)을 짓고 육년이 지난 후에 돌아갔다.

자공은 천성이 영오(穎悟)하고 낙관적이며 활발하였고 정리(情理)에 통달하였지만 다른 사람의 시비(是非)에 대하여 평론하기를 좋아하는 흠이 있었다. 이는 그의 마음이 곧고 말하는 것이 솔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언변이 매우 좋은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언변에 매우 능하여 외교적인 면에서 비범한 재능이 있었다. 공자가 제자들을 평하면서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라 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자공의 가장 두드러진 요소라면 역시 화식(貨殖)에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상업활동에 종사하였는데 공자를 종사한 뒤에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자공은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이러한 일로 인하여 때로는 학업을 게을리 하고 예를 소홀히 하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공은 공자의 각별한 총애를 받은 제자였다. 이는 자공이 공자에게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었을 때 "호련(瑚璉)"이라 대답한 것이나 "지나간 것을 알려주면 앞에 올 것을 안다"고 한 점 등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된다. 만년에는 공자의 학설을 전파하는 공로를 세웠다.

당 현종 개원 8년(720)에 공문십철의 지위에 열입되었으며, 동왕 27년(739)에 여후(黎侯)로 봉해졌고, 송나라 진종 대중상부 2년(1009)에 여양공(黎陽公)으로 추봉하였는데, 도종 함순 3년(1267)에 여공(黎公)으로 개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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