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조육현(宋朝六賢)-5. 미백 장재(郿伯 張載, 1020 - 1077)
동무배향(東무配享) 제3위(第3位)
북송 때의 저명한 철학가로 '북송오자' 중 한 사람이며 송 명리학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는 자후(子厚)이고 시호는 명공이다. 봉상미현(鳳翔郿縣) 횡거진(橫渠鎭)사람이기 때문에 '횡거선생'으로 일컬어졌으며, 송나라 진종 천희 l4년(1020)에 출생하여 송나라 신종 희령10년(1077)에 졸하였다.
관중(關中)에서 강학(講學)하였으므로 그의 학을 관학(關學)이라고 한다. 어려서는 병법 논하기를 좋아하였으나 후에 범중엄(范仲淹)의 가르침을 받아 『중용』에 치력하였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佛), 노(老)에 눈을 돌려 여러 해 그 설을 궁구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자 다시 전향하여 육경을 탐구하였다고 한다. 진사에 합격하여 기주사법참군과 운암령이 되었고, 숭문원교서와 감찰어사이행을 지냈다
그의 학문은 역을 종으로 삼고 『중용』을 체로 하고 공맹(孔孟)을 법으로 삼아 유가(儒家)로써 도통의 정신을 삼아 자기의 사상을 나타냈다. 그는 공자의 '인(仁)'의 학설을 발양시켰고 학문은 수양공부를 통하여 기질을 변화시켜 '천지지성(天地之性)'을 보존하고 선천적인 선성(善性)을 회복하여 성인과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자연관으로는 기일원론(氣一元論)을 견지하여 기(氣)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말미암아 형형색색의 만물이 생멸변화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인식론 상으로는 사람의 지각은 객관 대상, 즉 외물과의 접촉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았으며, 인성론 상으로는 '천지지성'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을 대립 개념으로 보고 후천적인 노력에 의하여 순선(純善)한 '천지지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장재의 사상은 송 명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원기일원론(元氣一元論)은 중국 철학사상 유물주의의 원기본체론(元氣本體論)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개창하여 후에 왕정상(王廷相), 왕부지(王夫之), 대진(戴震)등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고, 그의 인성론은 주희(朱熹)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정몽(正蒙)』, 『서명(書銘)』, 『경학이굴(經學理屈)』 등과 후인들이 편찬한 『장재전서(張載全書)』와 『장재집(張載集)』이 있다. 송나라 영종 가정 13년(1220)에 명공(明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종 순우 원년(1241)에는 공자의 묘정에 종사되었으며 미백(郿伯)에 봉해졌다.